최근 미래 사회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떠올린다.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적지 않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산주의를 떠올린다.
일하지 않아도 돈을 준다니.
누군가는 빨갱이 같은 소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공산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상황을 보면 정반대에 가깝다.
공산주의는 노동의 가치를 매우 높게 본 사상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세계를 바꾸고,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실현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노동력을 파는 존재로 만들었다면, 공산주의는 인간을 노동을 통해 완성되는 존재로 보았다.
둘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 다 같은 전제를 공유한다.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라는 전제다.
나는 바로 이 전제가 무너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희소성에 의해 결정된다.
희소한 것은 비싸고, 흔한 것은 싸다.
다이아몬드가 비싼 이유도, 강남 땅값이 비싼 이유도, 유명 의사의 진료비가 비싼 이유도 결국 희소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 노동은 어떨까.
지금까지 인간 노동은 꽤 희소한 자원이었다.
사람은 키우는 데 오래 걸리고, 교육하는 데 돈이 들고, 하루에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되어 있다.
숙련된 사람은 더더욱 희소했다.
그래서 노동에는 가격이 붙었다.
월 수십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쨌든 인간 노동은 돈으로 환산될 만큼의 희소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AI와 로봇이 이 희소성을 흐리게 만든다면?
AI가 회계와 법률 문서를 처리하고, 코드를 짜고, 영상을 만들고, 상담을 하고, 기획안을 쓰고, 로봇이 물건을 나르고, 청소하고, 조립하고, 배달하는 세상이 온다면 인간 노동은 더 이상 지금처럼 희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때 인간 노동의 가격은 어떻게 될까.
조금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월 300만 원짜리 노동이 월 30만 원짜리 노동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사람이 못해서가 아니다.
사람보다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오래 일하는 존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처음부터 아름답게 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초반에는 매우 비관적이고, 비판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전문직은 전문직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기업 내부의 사무직은 사무직대로 저항할 것이다.
AI 금지.
로봇세 도입.
인간 의무 고용.
자동화 기업 규제 등등.
온갖 구호가 튀어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은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역사는 노동을 팔아 생존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 구조에서 노동의 가격이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기초가 흔들리는 문제다.
지금 사회는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일해라.
능력을 키워라.
노력하면 먹고살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인간 노동을 사줄 사람이 없다면.
능력을 키워도, AI가 더 빠르게 따라잡는다면.
노력해도, 그 노력의 시장가격이 계속 떨어진다면.
그때 사람들은 묻게 될 것이다.
그럼 나는 대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이런 세상이 천천히 오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실업자가 한 달에 1%씩 늘어나는 식이라면 실업 당사자를 탓할것이다.
“네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
“네가 시대에 적응을 못 해서 그렇다.”
“네가 게을러서 그렇다.”
이렇게 개인의 실패로 포장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 달에 10%씩 노동시장이 무너지는 수준의 충격이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쉽다.
물론 그런 급격한 변화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정말로 바뀌려면, 때로는 고통이 개인의 불행으로 숨겨질 수 없을 만큼 커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질문을 바꾼다.
“왜 저 사람은 일을 안 하지?”에서
“왜 인간이 반드시 일을 해야 하지?”로.
여기서 공산주의와의 차이가 드러난다.
공산주의는 노동자를 해방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전제에는 여전히 노동이 있었다.
노동하는 인간, 생산하는 인간, 사회에 기여하는 인간.
그러나 AI와 로봇의 시대가 던지는 질문은 다르다.
노동자가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자체가 인간에게서 분리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도 노동에 기반을 둔 사회였다.
공산주의도 노동에 기반을 둔 사회였다.
둘 다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 보았다.
하지만 앞으로 올지도 모르는 사회는 인간을 노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사회다.
인간 노동이 필요 없는 사회에서 부는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까.
억지로 희소한 노동을 만들어야 할까.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일부러 사람에게 맡겨야 할까.
아니면 노동과 소득을 분리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솔직히 답을 모르겠다.
많은 한국인은 기본소득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공짜 돈, 포퓰리즘, 사회주의, 빨갱이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변화가 막상 닥치면 굉장히 빨리 적응하는 민족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욕하다가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순식간에 받아들인다.
어쩌면 한국은 기본소득을 가장 싫어하면서도,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이때의 기본소득은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basic income과는 다를 수 있다.
최소한의 생존비를 나눠주는 수준이 아니라, 자동화된 생산력에서 발생한 풍요를 사회 구성원에게 배당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기본소득이라기보다 풍요소득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러나 그 풍요가 모두에게 갈지, 일부 소유자에게만 갈지는 알 수 없다.
AI 서버를 가진 자.
로봇 공장을 가진 자.
전력망을 가진 자.
데이터를 가진 자.
플랫폼을 가진 자.
규칙을 정하는 자.
이들이 새로운 귀족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래는 오히려 새로운 봉건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노동하지 않는 대중은 국가나 플랫폼으로부터 배급을 받고,
그 대가로 지지와 충성, 관심과 데이터를 제공한다.
권력자는 착취가 아니라 배려의 얼굴을 하고 나타날 것이다.
대중은 복종이 아니라 편리함의 이름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인간 노동의 희소성은 희미해지고 있다.
노동의 가격은 흔들릴 것이다.
노동을 중심으로 짜인 사회 윤리도 흔들릴 것이다.
위와같은 세상이 오고있다는걸 덤덤하게 말하는것이다.
앞으로 길게 잡아도 10년.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게 될지 모른다.
인간은 더 이상 노동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
그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사라져가는 노동을 억지로 붙잡고, 인간에게 계속 일을 시킬 것인가.
아니면 노동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미래의 가장 큰 충격은 AI가 인간처럼 일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런 인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