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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오일쇼크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1차 오일쇼크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이래 4번의 중동전쟁을 치뤗지만 모두 아랍권의 패배로 끝났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또다시 패배한 아랍권은 이에 빡친 OPEC(이하 오펙)은 원유가격을 인상한다.

1차 오일쇼크당시의 오펙회의


중동전쟁에서 아랍권이 빡쳣는데 오펙이 가격을 올리게 된 이유는 전세계 석유생산의 50%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아랍권이 곧 오펙이기 떄문이었다.

원유가격 인상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옹호햇던 서방세계에게 목소리를 내게 되는 아랍권의 몸부림과 같은것이었다.

원유가격을 인상하자 즉각적으로 서방선진국들에게서 눈이 돌아왔다. 그러자 이스라엘에 철수하지 않으면 석유 생산량을 줄이겟다고 협박을 하게된다.

수요가격탄력성이 낮은 원자재특성상 원유생산량의 감소는 가격의 인상을 가져왔다. 원유가격은 3개월만에 3배가 오르게 되고 당장 세계경제는 혼돈에 빠지게된다.

이왕지사 서방과 대립의 각을세우게된 오펙의 일원 리비아는 이판사판이었다. 헐값에 석유를 채굴하고 잇는 다국적기업도 더이상 채굴하지못하도록 내쫒았다. 이 일을 해낸게 바로 얼마전 돌맞아 죽은 리비아의 카다피가 이때 흥하게 된다. 카다피가 다국적기업을 몰아내는걸 지켜본 다른 OPEC 산유국들도 카다피를 따라 다국적기업들을 자국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비로소 오펙이 전세계 생산량의 81%를 차지하면서 그야말로 원유가격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을 갖게된다.이는 더이상 중동은 빌빌대는 세계의 주변국이 아니라 그 어느 선진국도 무시할 수 없는 세계무대의 큰손이 되었음을 뜻한다.

더이상 서방은 대놓고 이스라엘을 옹호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석유파동의 빌미를 제공한 이스라엘도 전쟁에 이겼지만 편하지많은 않았다.

1차 오일쇼크이후 자원의 무기화가 시작되게 되었으며, 각국의 에너지 수급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있어 현재 인류는 oil shocked 시대에 살고있다.